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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덕 이야기

초현실을 쫓는 사람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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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란야 (221.♡.150.94) 작성일16-05-06 21:28 조회4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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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문덕 원장님과 회원 간의 상담 내용을 중심으로 2000년부터 작성된 글입니다.)
 
 
한번은 경남 울산에 사시는 문 보살님이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산 기도를 많이 다니시는 분인지라 복장도 수수하면서 거침이 없는 산사람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은 평소에 故 손석우 선생이 살아생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분으로 필자를 찾아올 때만 해도 손 선생님의 건강은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필자를 만나고자 한 이유는 무언가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어서 꼭 필자의 의견을 듣고 나서 결정을 하겠다는 겁니다. 손석우 선생이 자신의 수제자로 들어오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으며, 그러면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누군가 큰일을 할 분이 나타나면 그분에게 드려야 한다며 조급해 하더란 겁니다.
 
 
문 보살님의 생각으로는 필자가 딱 적임자이라며 손석우 선생이 지시한대로 제자로 들어가야 하냐고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돈을 전부 필자에게 희사(喜捨)를 하겠다고 하니 성의는 감사하지만 그 돈은 올바른 돈이 아니라 분란을 초래하는 돈이었으므로 필자가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지요.
 
그 순간 “그 양반 얼마 안 있으면 죽습니다.”라는 말이 필자도 모르게 불쑥 튀어 나와 그분은 깜짝 놀라했었습니다.
 
 
결국 제자가 되는 것도 본인이 선택할 사항이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거부하시라고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부산에서 손석우 선생과 지인들이 같이 호텔에 묵고 있었다고 합니다. 화장실을 갔던 손 선생이 꽤 시간이 지나가도 들어오지 않더란 거죠. 잠시 후 손석우 선생이 화장실에 쓰러져 죽어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으로서 참 안타까운 죽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살아생전 축적된 재산이 수천 억대가 넘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을 좋은 일에 쓰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영력자들이 제일 첫째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하는 부분은 돈이 아닌가 합니다. 돈을 받고 자신의 능력을 행사함은 결국 상대방의 업을 다 받겠다는 뜻인데 이를 알지 못하고 돈만을 탐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명을 재촉하게 되는 겁니다. 죽고 나니 재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국가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한 분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박회장님의 막강한 힘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력이 주어져 있었지만 이를 한번도 남용한 적이 없으며 더더욱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고 하니 정말 이런 분이야말로 하늘이 낸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한번은 그분의 아들인 박사장님이 아버지의 심중을 떠보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청렴결백하게 하셔도 누가 알아줍니까?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가끔 궁금한 부분이지만 청탁을 부탁하는 돈을 물리실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신 적은 없으셨나요?”
 

 “인간의 어리석음은 때론 갈등을 불러오지만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 국민들이 배곯는 고통을 보는 것이 가장 한스러웠단다.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경제를 살려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 먼저 윗물을 깨끗이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내가 바로 서야 그 밑에 있는 수하들이 소신껏 자신의 역할을 할 수가 있는 거란다.”
 
 
 
국가 시책을 펼치다 보면 피해갈 수 없는 어려운 고비가 닥치게 됩니다. 박 정희 정권 때부터 우리나라의 근대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해결하기 위하여 외국 자본을 들여와 국가 발전을 이룩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지금도 안 보이는 곳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얼마 전 국내 일간지에 소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분이 걸어온 산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빙산의 일각만이 보도된 정도라고 하며 지금도 일본 및 중동 여러 국가에 마음이 통하는 지인들이 있어 언제든 도움을 청하면 달려올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故 손 석우 씨(‘터’라는 책을 지음)와 박 회장님에 얽힌 일화를 박 사장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능력이 생겼을 당시 아침마다 회장님댁을 찾아와 문안 인사를 드릴 정도로 그분의 능력을 높이 인정하고 흠모하였답니다. 그때만 하여도 돈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박 사장님이 필자를 찾아와 자신의 험난한 인생사에 대하여 묻게 되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물거품같은 세상사에 회의가 들게 되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도가 단체를 안 가본 곳이 없이 두루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극비리에 단전호흡의 일인자였던 故 권태훈 옹과 마지막 만남을 가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바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필자를 만나게 된 겁니다.
 
 
박 회장님과 같이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군요. 해마다 한 번씩 강화도 마니산 수행을 갔었는데 그때 박 회장님도 같이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70 중반을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쉼없이 정상까지 한달음에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지요.
 
 

2월의 쌀쌀한 날씨에 싸리눈을 맞으며 산을 오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새벽 4시경.. 모든 회원분들은 나지막히 옴진언 소리를 내며 짙은 안개를 헤치고 묵묵히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니산 첨성대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니 바다에 휩싸인 것처럼 안개가 모든 것을 다 덮고 있었고, 마치 태초의 지구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처럼 황홀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하늘에 제를 지냈습니다. 눈을 감고 의식을 주도하던 중 필자의 눈에 거대한 UFO가 떠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눈을 감고 의식을 주도하던 중 필자의 눈에 거대한 UFO가 떠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단군의 우주선이었습니다. 그들도 오늘의 의식을 알고 땅에 있는 우리들과 같이 제를 올리며 축하와 격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식이 끝난 후 박 회장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필자에게 무언가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원장님, 혹시 내 얼굴에 후래쉬를 세 번 비추셨나요?” 하시며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웃으며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너무나도 희한한 일을 경험했노라고 놀라워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대낮 같은 밝은 광선이 얼굴에 세 번이나 번쩍여 하마터면 눈을 뜰 뻔했다며 다른 사람들도 이런 현상을 본 건지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빛의 형제들이 박 회장님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준 현상이었으며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열심히 살라”는 묵언의 사명을 주었음이 필자에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인정을 받아 힘을 얻은 박 회장님은 지금도 많은 난관들이 일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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