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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련안내

깨달음과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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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란야 (221.♡.22.200) 작성일13-03-02 18:34 조회2,981회 댓글0건

본문

수행의 완성을 위하여
 

이제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이제까지는 옳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닙니다.
 
세상에 알려져 있는 모든 수련법들이 업장을 형성하고 그 윤회 사이클을 빠르게 돌려,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윤회의 시기를 넘어서 지구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는 위대한 시기가 코 앞에 와 있습니다.
 
온 우주가 힘을 합쳐 지구와 지구인의 의식 차원을 높이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하고 의식과 몸을 정화하여 이번에야말로 길고 긴 윤회의 사슬을 끝내야 하며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남은 몫이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는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뭇 종교와 사상가, 예언자들이 얘기하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말씀드리는 종말은 한 패러다임이 멸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입하는 전환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 대 전환점(천국이나 극락으로 표현할 수 있음)의 시기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변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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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깨달음과 버림

이는 계단식으로 차근차근 이루어지는 영적 진보가 아니라, 천지가 개벽하는 차원에서 차원으로 이동하는 엄청난 변화여야 합니다. 우리 체질의 근본적인 에너지 장이 완전히 바뀌어야 물질적인 차원에서 정신적인 차원으로, 자기 중심적에서 우주적으로 의식의 차원을 높여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처럼 지극히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자신 만을 위해 하는 수련의 한계를 벗어나 모두를 위한 우주적인 육체와 의식체가 고진동의 파장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구에 사는 우리는 이러한 초우주의 원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움직임에도, 스스로의 몸과 의식에도 관심이 없으며 서구의 물질주의와 획일된 종교관에 기대어 막연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종교관이란 것도 인간들이 만들어낸 관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 진정으로 열려있는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
 
그것은 생각보다 명쾌하게 얻어질 수 있습니다. '버려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버림'이라는 공식은 어떠한 과학 보다 명쾌하고 합리적인 우주의 법칙입니다. 이 글을 쓰고자 하는 목적도 바로 '버림'에 대한 확신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버림이란 것은 의식 차원에서나 수련법에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화두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버림이란 집착을 놓아버림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버리고 재산을 버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한 버린 공간에 더 많은 욕심이 찬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버림입니다. 스스로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버리는 것은 모으는 행위보다 더 나쁜 행위입니다.

재물이나 권력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명예나 자기 만족을 위해서 버림을 선택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도를 닦는 행위는 가족이 고통스러운 만큼 더 많은 고통과 한을 만들고 업장을 생성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버림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뛰어 넘어 우주 의식에 도달하면 우리가 '신(神)'이라 부르는 신성한 의식으로 깨어날 수 있게
됩니다.
수련법으로서의 '버림'은 모든 기운을 위아래로 통하게 하여 기운을 모두 흘려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수련하는 사람들은 氣를 모은다거나 모은 氣를 돌린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시작은 모으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모든 것은 원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모은 후의 결론은 주변까지도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가둬 둔 물이 썩는 것처럼 몸 안에 순환되지 않고 고인 氣는 일시적으로 건강을 좋게 하는 듯 하지만 결국 기혈이 막히고 몸을 썩게 만들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 모든 수련법의 기본처럼 되고 있고 모든 종교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氣마저 버려야 한다는 것에는 사람들의 생각이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으려는 욕심이 깨달음을 방해하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저급한 기운을 모으게 되거나 수련을 지도하는 스승이 탁기를 많이 가진 자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쉽게 빙의가 되며 몸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고 치유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버리는 수행법 자체는 모으는 단전호흡법 보다는 훨씬 쉽게 이루어집니다. 꼭 어려운 가부좌를 하지 않고도 편안한 자세로 앉아, 정수리 백회에서 기운이 내려와 통로를 타고 회음과 용천으로 지나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로 수행이 됩니다. 자신의 몸을 우주의 기운이 내려와 지나가는 통로라 생각하고 밝은 기운(선)이건 어두운 기운(악)이건 흘려보내게 되면 진정한 버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것은 '할 일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생은 업을 짓거나 소멸시키면서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세상은 그러한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생애를 살다가 공부를 마치면 삶이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이란 깨닫는 공부를 다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왜 살아있는가?' '이 생애 동안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가?'

여태까지 몸과 마음의 수행법이 각각이었다면 이제는 삶의 모습과 육신이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는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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